친구의 생일. 내가 축하하는 건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게 된 지는 10년이 됐다. 의미를 찾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오랜만에 생각을 담은 일기를 쓰기에 완벽한 날. 자랑하고 싶은 나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
남들 앞에 서서 통솔하기를 잘하고, 꼼꼼해서 오차가 없는 사람. 누가 봐도 일을 맡기기에 적합한 대상. 옆 반인 나조차도 그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다. 때로는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질투하기도 했다. 그게 질투라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지만. 저 공리주의적인 아이는 내 친구가 될 수는 없으리라 단정짓기만 했다. 그 친구가 행복을 빌어주는 다수에 내가 포함될 수 있다는걸, 즉 그 아이가 나의 행복도 빌어주리란 걸 절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그 아이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겠지. 나는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니까. 학기 초에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적어내라는 지시를 들었을 때, 나는 친해지고 싶은지 아닌지를 떠나 '찐친'을 찾기엔 늦었다고 단정짓고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적었다고 했다. 뭘 보고 그랬느냐고 묻지는 못했지만, 그 말을 하는 그 애가 너무 빛났다. 너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말하는 솔직함도, 편견 없이 나를 대하던 것도. 여전히 새로운 걸 잘 흡수하고 또 나에게 가르쳐준다. 그렇게 여전히 반짝인다.
좋은 걸 보면 진짜 좋다고 말하고, 슬픈 걸 보면 눈물부터 나오는 타입.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만큼 타인의 숨겨둔 감정도 끌어낼 수 있다. 또, 다채로운 감정을 지닌 만큼 타인의 감정도 잘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큼 타인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 애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자신만큼은 이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상대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과정까지도 존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믿음직한 사람은 정말 귀하다는걸,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은 대부분 공감할 거다. 그래서 가끔은 이 사람과 멀어지게 된다면 분명 내 탓이겠구나 싶다.
해가 넘어가는 동안 많은 일을 겪고 나아가기도, 주저앉기도 하면서 변하지 않은 것은, 섬세하고, 다정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비롯해서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 많은 순간을 그에게 빚지며 버텼다. 지금의 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나 자체가 없을 수도 있었다 할 정도로 몇 번이나 나를 붙잡아 주었다. 기다려주기도 하고, 일으켜주기도 했다. 완벽한 타이밍과 균형으로.
변한 것은, 더 유연해지고, 더 영리해지고, 더 부드러워진 것. 도움이 필요할 때는 요청할 줄 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일목요연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기술이 있다. 쉬워 보이지만 나는 비효율적으로 혼자 안고 있곤 하는 사람이기에 대단하게 느낀다. 또, 맞닥뜨린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한다. 무엇이든 해내야 하는 건 해내고 만다. 그리고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알라딘의 양탄자를 탄 자스민처럼 다른 사람의 상상을 타고 날아갔다 올 수 있는 것. 의미 없는 공상도 쉽게 받아들이고 몰입해 준다. 자연스럽게 현실로 오는 과정까지도 함께한다. 덕분에 나는 시간의 속도에 비해 덜 경화되고 있다.
어떤 시간은 흐르는 게 느껴지지도 않는데 지나고 보면 먼 곳까지 와있다. 끝은 어디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굳이 상상하진 않을 거다. 상상함으로써 깨닫는 것들은 방해만 될거니까. 먼 훗날의 일은 모른대도 이 아이와의 만남을 평생의 행운으로 생각할 거란 건 분명하다. 이런 말에 어떤 만약의 부담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충분하고, 꾸준했다.
스스로는 될 수 없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동경하게 되어 늘 감사함 뿐이다. 나도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만을 바란다. 더 큰 행복을 주겠다고는 장담 못하지만, 적어도 옆에서 맞서고 싶은 마음.
2024.04.17 소중한 너의 생일을 축하하며
If soulmates do exist, they're not found.
They're made.
- The Good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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